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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의견은 '계시지' 않고, 더 '낳은' 방법은 없다.


1. 틀려도 굳이 고쳐주지 않는 우리말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수 많은 이메일을 주고 받고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말로, 때로는 글로 의사 소통을 하는데요...  의사소통에 중요한 오류가 있지 않을 경우에는 굳이 틀렸다고 가르쳐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같이 일하는 선후배들이 습관적으로 잘못 쓰는 말을 접하면서도 굳이 고쳐주게 되지는 되더군요.

오늘은 사내 간행물을 읽다가 '상사가 차마 지적하지 못하는 우리말 예절 (조항범)'이라는 글 중에 평소에 많이 공감했던 내용이 있어서 몇 자 적어봅니다.  

말이인격이다
카테고리 인문 > 언어학 > 국어학 > 국어이야기
지은이 조항범 (예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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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견 '계신' 분?

요즘 회사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좀 달라져서 상사라고 해도 맘 놓고 말을 놓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얘기를 할 때는 좀 다른 것 같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예전에는 부서원들을 많이 편하게 대하시다가 최근에는 어떤 이유인지 부서원들에게 말을 많이 높이시는 어떤 분이 회의 때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혹시 다른 의견 계신 분?"

순간, "허걱.  의견이 계시다니... 너무 쓰셨는걸.."  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 얼굴을 보니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표정들입니다.  순간 드는 생각.  "요즘 바뀐 걸 내가 모르고 있는건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반, 뭐 뜻만 통하면 되는거지 뭘 그런 것 까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 반 정도였을까요?
 
위의 문장은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신 분?"이라고 해야 합니다.  '계시다'라는 말은 '사장님이 자리에 계시다'와 같이 사람이 주어가 되었을 때 써야하고, '의견'을 높이려면 '있으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그렇고 이후에도 그 분에게 '의견이 계시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얘기하기는 좀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더군요.  저도 '뜻만 통하면 되는거지, 뭘 그런 것까지 지적질이야~'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3. 더 '낳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갑이 을보다 '낫다'는 표현을 '낳다'라고 잘못 쓰는 경우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정말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얼마 전에 저와 같이 일하는 후배가 메일에 쓰기를,

"더 낳은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허걱, 이 친구까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도 정말 잘하고, 똑똑한 친구인데 맞춤법 틀리는 것은 그와는 관계가 없나 봅니다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고... "라고 써야겠지요.

4. 수고하세요?

"수고하세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이 쓰는 표현인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상사에게 이 말을 씁니다.  저 같은 경우는 부서원들과 전화 대신 메신저를 많이 하는데, 부서원들이 부서장인 저한테 끝마치는 인사말은 십중팔구, "그럼 수고하세요."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예전부터 아버지한테 윗사람한테는 '수고하세요'라는 표현을 쓰면 안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수고하세요'라는 말 자체를 잘 안쓰는 편인데, 요즘에는 너무 많이 듣기 때문에 그냥 적응이 되어 갑니다.  제가 쓰지는 않지만, 누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을 때 굳이 고쳐 주지는 않는거죠.

5. 차주, 차차주?

여러분들은 회사에서 메일로 공지를 하거나 공식적인 문서를 작성할 때 '다음 주'를 어떻게 쓰시나요?

"차주 회의는 9월 17일 오전 10시입니다."
"금주 실적, 차주 계획"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대기업이라서 그런지 '차주(次週)', '금주(今週)'와 같은 표현을 많이 씁니다.  최근에 받은 메일에서는 급기야 '차차주'라는 말까지 등장하더니, 제가 주간보고서에 '이번 주 실적'이라고 적은 것을 '금주 실적'으로 고치기도 하더군요.

"다음 주 회의는 9월 17일 오전 10시입니다."
"이번 주 실적, 다음 주 계획"

'금주', '차주'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굳이 우리말 대신에 이런 식의 한자어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6. 당부드립니다?

한 1년 쯤 전인 것 같은데, 후배 사원의 공지 메일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 해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어찌 보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듯한 문장인데, 문제는 메일의 수신인들이 100% 선배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부드립니다'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많이 어색합니다.  '당부'는 보통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부드린다'라는 표현 자체가 많이 이상한 것이지요.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얘기할 때에는 '부탁'을 '드리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겠지요.

"...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수고하세요' 정도는 워낙 많이 쓰고 있고, 사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당부드립니다'는 표현은 많이 거슬려서 '당부'라는 말은 윗 사람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고 그 친구에게 얘기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7. 틀리면 고쳐주는 우리말

여기까지 글을 쓰고 보니, '내가 쓴 글에는 잘못된 표현이 없나?'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는 후배들이 잘못 쓰는 우리말이 있으면 고쳐줘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고쳐주지 않고 그냥 뒀다가 나중에 사장님께 '수고하세요'라고 '당부를 드리면' 곤란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