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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한 여인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긴 전각, 낙선재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의 하루


 
 
 햇볕이 정말 쨍했던 6월 어느 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에 다녀왔습니다.  오후에 2시간 정도 둘러보고 왔는데,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정말 많더군요.  궁궐 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이드의 일본어 설명을 계속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요즘 공부 중인 일본어가 짧아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요즘 주말마다 서울의 궁궐과 한옥마을을 다니고 있는데 "예전에는 왜 이런 곳들을 몰랐지?"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창덕궁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인데 가장 인상에 남았던 곳은 궁궐 내에 있지만 단청을 하지 않은 낙선재였습니다.

창덕궁 안내책자에 나오는 낙선재에 대한 설명입니다.  창덕궁 안내책자는 나름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든 티가 나서 집에 와서도 다시 읽어볼만 했습니다.

"낙선재는 한 여인에 대한 헌종의 깊은 사랑이 담긴 전각이다.  세자를 얻기 위해 간택하여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한 헌종은 경빈 김씨를 무척 아껴 함께 지낼 새 보금자리로 이 전각을 마련했다.  낙선재는 예술에 관심이 각별했던 헌종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서화를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마련한 개인적인 공간이다.  궁궐의 전각이면서도 단청을 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낙선재에서는 고종의 넷째아들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생활하였고 1989년 타계한 후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 <창덕궁>, 문화재청.

푸른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한 낙선재.  사람이 없는 앵글을 잡아보려고 하였으나 연이어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포기하고 그냥 사람도 자연스런 피사체려니 하고 찍었습니다.



헌종은 8세에 즉위하여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이양선의 출현, 천주교 박해, 수해와 전염병, 2번의 모반 사건 등을 겪으면서 쉽지 않은 재위 시기를 보냈습니다.  2명의 왕비에게서 후사가 없어 세자를 얻기 위해 간택하여 맞이한 후궁이 경빈 김씨였는데, 헌종은 경빈 김씨를 맞이한 뒤 약 2년만에 후사없이 1849년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경빈 김씨는 1907년 7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으니 후사 없이 60여년을 쓸쓸하게 살다가 떠났군요.  <창덕궁> 안내 책자에 나오는 "사랑도 한도 포근하게 품어 안다."라는 말이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듯 합니다.
낙선재로 들어가는 문, 장락문입니다.  입구 궁궐 안에 있는 여느 건물과는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을 팍팍.

 
문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과 함께 보이는 낙선재 본 건물이 있습니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 마당 한가운데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건물 바로 아래의 그늘에만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낙선재"라는 현판은 청나라의 대가 섭지선의 글씨라고 합니다.  서예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범상치 않은 글씨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989년까지 이방자여사가 살던 곳이라고 하는데 궁궐 안 건물이라기 보다는 지금 사람이 살아도 될 것 같은 평범한 한옥의 느낌입니다.


석복헌.  "복을 내리는 집"이라는 뜻인데, 왕실의 '복'이란 다름 아닌 세자를 얻는 일입니다.  건물의 이름에서도 절실함이 묻어 납니다.


안쪽 구경을 마치고 나와서 담장 밖에서 바라본 모습.  저 위쪽의 정자에도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길을 찾기가 어렵더군요.  


입장료는 3000원인데, 안내책자에 있는 설명들을 읽어보면서 거닐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갑니다.  날이 좀 덥기는 했지만요.